이름 없는 디자이너 사조직
오픈 카톡, 각종 밋업, 스터디 등등에서 연이 닿아 알음알음 구성한 IT 업계 디자이너 모임이 있습니다. 주로 슬랙에서 서식하며 ‘님’ 호칭을 붙이고 나름 자율적인 룰도 있는 사조직입니다.
초기 멤버(==고인물)이라는 이유로 운영 비슷한 걸 하게 된 것도 벌써 2년 남짓. 연말도 됐겠다, 새로운 디자이너와의 만남도 필요할 것 같아 우리끼리 뭉치지 말고 <전국~ 지인 자랑>할 수 있는 연말 파티를 기획해보기로 했습니다.
시간과 장소 정하기
가장 먼저 투표 슬랙봇 Polly로 날짜를 정합니다. 오거나이저의 특혜(?)로 제가 가능한 날짜를 우선 던지고, 선택지에 가능한 날짜가 없으신 분들은 스스로 옵션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2월 13일이 가장 유력해 투표 인원을 한데 묶은 연말 파티 전용 채널을 구성해 본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습니다. 채널은 슬랙 멤버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참/불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관을 포함한 각종 결정 사항은 항목별로 쓰레드를 통해 대화합니다. 병렬 구조로 여러 항목에 대한 동시 다발적 대화가 가능합니다. 진행 중이거나 중요한 대화는 채널에 pin을 해두어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머지 다섯분의 호스트(슬랙 멤버)의 역할 분담이 골고루 나뉘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이 편했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대관에 관한 건 A 님에게, 출력물에 관한 건 B 님에게!
비주얼 디자인하기 (맞다, 우리 디자이너였지 참.)
명색이 디자이너가 여는 디자이너 모임인데, 간단한 포스터나 스티커는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있어야 한다’ 일까요 )
처음엔 혼자 감당할 마음으로 키 비주얼을 일러스트에 작업했는데, 마침 figma를 메인으로 쓰는 다른 멤버 분이 작업을 도와주셔서 figma로 옮겼습니다. 일러스트에서 CMYK로 작업한 HEX 값을 그대로 적용해 인쇄에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피그마 영업 글 같은데 사실 맞습니다.
스티커로 인쇄하려고 만들어 둔 오브젝트들을 잘 버무려(?)주셔서 오로지 피그마 프로토타입 기능으로만 작업한 귀여운 gif도 탄생했습니다. 정적인 이미지보다 훨씬 ‘PLAY’스럽고 힙해보이죠? (대관 처에 모니터가 따로 없어 아쉬웠습니다.)
비상 상황에서도 figma가 빛을 발했습니다. 인쇄를 담당한 멤버분이 pdf 파일을 깜빡하셨지만, 웹 툴인 figma 덕에 무사히 인쇄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수정 사항도 바로바로 반영되니 덩치 큰 용량의 파일이 슬랙을 왔다 갔다 할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메인 포스터. 내년에도 ‘재미있게 놀이하듯 디자인을 해보자’는 마음과 2020년의 ️을 의도했는데, ‘왜 포스터에 보자기는 없나요?’ 라는 질문을 받은 웃지 못할 후문이 있습니다.
배포하기
1.
대신 참여할 디자이너 대타를 구하고 전액 환불받기
2.
대관료 1만 원 제외하고 환불받기
실제로 참여를 못 하게 되어 대타를 구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장치가 없었다면 결원이 생길 때 저희가 직접 대타를 섭외하거나 대관비를 손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재밌게 즐기기
모든 준비가 끝나고 행사 당일, 본격적으로 게스트분들을 맞이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시간 이후라 제시간에 못 오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 실제 행사 시작은 30분 여유를 두었습니다.
IT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스티커를 좋아하기 때문에 맥북에 붙일 리무버블 스티커도 준비했습니다. 이름표는 고정인 호스트분들만 인쇄를, 변동 가능성이 큰 게스트분들은 현장에서 작성했습니다.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2년 전 기획했던 송년회에서 오간 질문들과 디자이너들의 모임에 맞춰 새롭게 적은 총 스무 가지의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옆 사람에게 질문할 번호를 고르면 해당 번호의 질문에 대해 답변해야 하는데, 평상시에 할 수 없는 질문을 주고받으니 어색함이 빠르게 녹은 것 같습니다.
사실 추상적인 질문들이 대부분이라 어색했을 텐데, 핀잔을 주시면서도 즐겁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전 이 질문 리스트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마치고 2019년 회고록 작성과 2020년을 대비할 만다라트 플랜을 세웠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개인으로서 소회나 계획들을 적고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회고는 매달 말에 개인적으로 하는 회고 방식을 가져왔고, 만다라트는 기존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 디자인만 다시 했습니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솔직한 내용이 많이 나왔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공감대도 두텁고 서로에게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더 재밌게 즐기기
대관해서 진행한 행사는 총 3시간, 그러니까 밤 10시에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새 나라의 어른이들은 집에 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최종의 최종의 최종_jpg까지 섭렵하고 새벽 4시에 집에 갔다는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마치며
조금 아쉬웠던 점
1.
연말이라 대관이 힘들었던 점도 있었지만, 한정된 인원만 받을 수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지인이 많았던 것입니다. 다음 행사를 연다면 지금의 두 배 정도 인원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단계 느낌일까요?)
2.
입금 확인이나 확인에 대한 문자 발송이 수동으로 되었습니다. 총무를 맡았던 멤버 분이 많이 번거로우셨을 텐데, 이 부분이 자동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연말 파티를 처음 기획해보는 것도 아니고, 디자이너 모임을 처음 열어보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 행사는 개인이 모인 작은 그룹에서 순전히 ‘좋아서’, ‘자율적으로’ 벌였다는 데에 의미가 큽니다.
또한 적절한 구면과 초면의 콜라보를 즐겨주신 게스트분들도 나름의 의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래는 한 익명의 게스트 후기입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에 대해서도 러프하게 계획을 세워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디자이너분들과 솔직하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구요.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함께하고 싶어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벌인 파티에 참여해주신 8명의 게스트분들과, 회사 일만큼 열정적이고 촘촘히 준비해주신 6명의 호스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보냅니다.
내년에도, PLAY DESIGN 2020!
자료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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